Sugar.. Tasted Good

by 머언산 | 2007/08/24 00:15 | 포샵질 | 트랙백 | 덧글(0)

친절한 부평 한전씨

최근 부평 한전을 갈일이 있어 몇차례 찾았는데 친절하고 성의 있는 안내 때문에 흡족했다.
관공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시원하고 좋은 건물에서, 넉넉한 근무조건으로 일하면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에겐 거만하고 뻣뻣하기만 한걸 보아오던 내겐 놀라운 일이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친절을 맞보는 일이 드문일이 아니엿으면 좋겠다.

by 머언산 | 2007/08/23 10:18 | 디카질 | 트랙백(3) | 덧글(0)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2007)
한국  |  멜로/애정/로맨스, 드라마  |  116 분  |  개봉 2007.08.15
감독 :  정윤수
출연 :  엄정화(서유나), 박용우(정민재), 이동건(박영준), 한채영(한소여)
국내 등급 :  18세 관람가

대작들이 각축을 벌이면 그 틈새에서 올바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영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최근에 가장 잘 언급되는 사례는 해피엔딩인데, 아주 망한 흥행은 아니였고, 나중에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많은 격려를 받긴 했지만 극장성적은 기대이하 였다. 여름철 대작들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개봉했다가 내려와야 했기 때문이였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건 다른이야기고...

나도 최근엔 극장을 자주 찾았기 때문에 왠만한 영화는 다 보았다고 생각했고, 뉴스에서는 디워와 화려한 휴가 때문에 개봉이 밀린 영화들이 많다며 볼멘소리들을 늘어 놓았지만.. 솔직히 특별히 눈길을 끄는 영화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와중에서도 용감히 개봉을 단행했고, 선전도 꽤 했음에도 이 영화에 눈길이 가지 않았던 이유는 마케팅의 실수가 아닐까? 

하지만 애인의 손에 끌러 만난 이영화는 기대 이상의 말끔하고 수려한 영화였기 때문에... 아름다운 배우들의 크로스오버를 강조하는 포스터는 그럭저럭 말끔했지만, 뻔한 불륜이야기일것처럼 선전하는 카피문구나 스와핑이라 단어가 주는 음침한 이야기를 암시하는 마케팅이, 이 영화를 잘 못 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이영화는 스와핑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권태로운 섹스에 활력을 얻기 위해 아내를 바꾸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는것이다. 하필이면 서로가 서로에게 끌렸을뿐 섹스 이야기가 아닌 사랑의 이야기이다. 그것도 정통한 멜로수준이라고 할까? 모두가 유부남 유부녀였을뿐, 진정한 사랑에 눈을 떠가는 이야기다.

화면은
 오밀조밀하고 말끔하다. 하지만 화면이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답답한것은, 탁 트인 화면에서는 깊이나 심층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면의 구도나 인물의 배치에는 탄복을 금치 못하겠지만, 깊이가 떨어지는것은 좀 아쉽게 느껴졌다. 감독의 감각인지, 카메라 감독의 감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탄복을 자아내는 부분은 인물들의 심리를 차근차근 풀어가고 쌓아가는 솜씨인데, 시나리오가 우수했던것일까? 탄탄한 드라마의 힘이 제대로 살아 있는 영화이다. 디워를 보고서도 한 이야기지만, 스펙타클을 위해 몇분에 수십억씩 그래픽을 그려 넣는것보다 '여의주는 그것을 소유한 자를 집어 삼킨다고 얻는것이 아니다' 같은 대사 한줄만 넣어도, 드라마가 살아남으로써 스펙타클은 배가 된다것을 왜 활용하지 못하는걸까? 그러한 면에서 작은역활을 하는 조연들조차 자기의 캐릭터가 충분히 살아 있을뿐더러 납득할 수 있는 연기가 되게 한것은 시나리오의 힘일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한소여(한채영)와 정민재(박용우)가 밀회를 즐기다가 시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인데, 재치 있게 상황을 모면한것처럼 보였지만, 서어머니는 소여의 옷자락을 스쳐 눈가를 매만져 주는 행동만으로도 불륜을 직감하고도 돌아 섰음을, 가볍게 암시해 준다. 새어머니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이런 관계는 오래가면 안된다는것은 알고 있을걸세'라는 한마디를 흘리는 시어머니는 기존의 불륜드라마에서 시어머니가 가지는 구태의연한 역활에서 벗어난 납득할만한 캐릭터를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반면
4명의 주연배우들은 각기 이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잘 연마되어진 캐릭터들을 그대로 활용했기 때문에, 관객들은 충분히 그들의 심리상태를 차분하게 쫏아가며 동감할 수 있게 되어있다. 캐릭터의 배경을 차분히 쌓아 가는 좋은 대사들이 이것을 뒷받침해주고 있음은 물론이다. 좋은 시나리오와 좋은 배우들이 좋은 궁합을 보여준 예라고 할것이다. 말그대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상황.

제목이
불필요하게 길다는 혐의를 벗을 수 없지만, 제목은 카피가 필요 없을만큼 주제를 잘 요약해 주고 있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줄만 알았는데 어느날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라고 영화는 묻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자신들의 선택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관객들은 배우들의 선택에 나름대로의 판단을 내리게 될것이다.

하지만
결론이 어떤것이였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당신이 그 결론을 어떻게 판단하더라도, 각자의 러브스토리는 사랑스러웠다는것을 인정할것이다.


P.S 남자관객들의 기대를 자아낼법한 한채영의 노출도 김혜수의 노출씬과 비슷한 수준을 보여준다. 나는 '설마'했지만 '어?' 할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로만 기억되었던 한채영의 연기가 상당히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좀 더 아꼈다가 써먹었어도 됐을텐데.. 싶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내가 마케팅을 담당했다면 이걸 줄기차게 밀었을것이다. 아마 그렇다면 바비몸매로 유명했던 한채영의 인기로 볼때, 30만 관객쯤은 충분히 더 끌어 모을것 같기 때문이다. 곧 결혼한더던데 제작사의 나름대로의 배려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by 머언산 | 2007/08/21 16:26 | 영화와 음악 | 트랙백(4) | 덧글(3)

여름

by 머언산 | 2007/08/20 16:01 | 디카질 | 트랙백 | 덧글(0)

서평 - 일그러진 근대 (상)

일그러진 근대- 100년 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
박지향 (지은이) | 푸른역사

정   가 : 13,000원
판매가 : 11,050원(15%off, 1,950원 할인)
마일리지 : 560원(5%)




옆집 아이와 나의 관계 - 얽히고 섥인 이 매듭은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달갑지 않은 사람이 가까운 이웃이라는것처럼 불편할때가 있을까? 길건너 일본이라는 이웃은 한때는 이마을의 주인 노릇을 하며 한국 마을 사람들을  종처럼 부려 먹었고.. 뒤의 큰마을 중국, 저 아랫 마을 필리핀, 인도네시아, 거칠것 없이 깡패 노릇을 하더니 간덩이가 부었는지 호수 건너 미국이라는 마을까지 기웃대다가 핵펀치를 맞고 K.O를 당했다. 미국마을 사람들이 들어와 원래 자기 마을이 아닌곳에서 모두 나가라는 바람에 물러 났지만.. 그간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자다가다 핏발이 곤두설 지경이다. 나쁜놈들. 죽일놈들. 속으로 분한 마음을 달래 보지만.. 그게 분한 마음만 독하게 먹고 안보이는데서 욕지거리나 풀어 놓는다고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저 마을끼리 축구라도 한판 벌어질라치면 이를 악물고 싸워주길 바라고 다소나마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응어리진 상처는 아직도 아물줄 모른다.

어째든 그 암울했던 상처도 할아버지대의 먼 옛날의 일이 되었으니, 이제는 어째서 그렇게까지 힘없이 당해야 했는지 요리저리 궁리를 해보게 된다. 출예굽을 한 백성들은 심지어 모세까지도 가나안에 들지 못했다는것은 매듭의 당사자들은 그 매듭을 쉽게 끊을 수 없기 때문일것이다. 알렉산더가 전차의 매듭을 풀라는 과제를 한칼에 내리쳐서 풀어 낼 수 있었던것도, 자신은 그 매듭이 어떻게 매어지기 시작했는지.. 어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 자신과는 무관한일이였기 때문일것이다.

다시 말해서 알렉산더 자신은 그 매듭의 시작이나 과정엔 관심이 없었고 그 매듭을 풀어야만 아시아의 주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도 아시아의 주인이 되기 위해 이 복잡한 과거의 사슬을 단칼에 풀어내야 할것이다.

돌이켜 보면 최근에는 일본에 대한 저주와 증오로 점철됐던 시각들이, 세월에 씻긴탓인지 좀 더 냉정하게 당시를 돌이켜 보려는 시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화기 당시의 선각자들의 행적을 살피기도 하고, 자생적인 자본주의의 발전의 흔적을 살피기도 하며, 실학이나 동학에서 근대화의 몸부림을 조명해 보기도 한다. 물론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친일잔재의 멍에가 여전히 우리의 발목을 잡아 늘이며 감정의 사슬에 얽어 매이게 하지만 이제는 좀 더 냉정하게 당시를 되돌아 볼 수 있을만큼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것이다.

하긴 언제까지 우리 할아버지를 병신으로 만든 일제의 앞재비 마사오 타령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직도 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당사자들은 무덤에 들어 갔거나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만큼 세월은 흘러갔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도 좀더 과감하고 객관적일수 있다.



 

왜 옆집 아이는 반에서 일등을 하게 되었을까? - 3자의 시각

그런점에서 '일그러진 근대'라는 책은 당시를 좀 더 냉정하게 돌이켜보게 할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이것은 당사자들이 아닌 제3자들의 관찰기이기 때문이다. 먼저 저자는 구한말의 외국인들의 자료들을 점검하며 그들이 한국과 일본, 중국을 보는 시각을 비교, 점검한다. 당시는 야만적인 팽창주의와 식민주의가 횡횡하던 19C말 20C초의 상황이였고, 관찰자들은 모두 저마다의 입장차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인종, 국가, 젠더, 신분, 개인적 성향의 차이)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당대의 외부인이 가지는 시야의 한계를 걷어 내고 돌이켜 보아도 여전히 가슴아픈 이야기라는것이다. 아니 솔직히 창피한 이야기이다. 한국인을 가축 취급하며 나태하고 더러운 민족으로 폄하하는 그들의 시선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그것이 구한말의 우리민족의 한 단면이였음을 부정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19c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한 세계의 최강대국이자 명예혁명으로부터 시작된 발달된 입헌군주제와 의회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진 나라였다.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스트어트 밀이나 경험주의의 로크와 같은 대학자들을 배출하고 있었으며, 산업혁명의 국가답게  아이작 뉴튼과 찰스다윈등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과 이론의 최선두에 서있는 국가였다. 한마디로 서구문명의 선도모델과같은 나라였던것이다. (따라서 서양문명에 매료 되었던 일본이 영국을 모방하고자 했던것은 당연한 귀결이였을지도 모른다) 또한 영국도 세계의 1/4를 차지한 제국 답게 미지의 땅에 대한 탐사도 꾸준히 지속했기 때문에, 서구의 입장에선 오지였던 조선을 탐험한 방문기들을 여러권 남길수 있었다.

서구(영국)의 눈에 비친 일본과 한국의 평가는 극단적이기까지 하다. 일본은 우리와 똑같은 문명인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관리들은 똑똑하고 청렴하며, 백성들은 부지런하고 애국심이 넘친다고 평가하고 있다. 반면 조선은 관리들이 부패한데다가 무능하고, 백성들은 게으르고 더럽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암염소라고까지 부르고 있는데, 어떤 맥락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취급하기 힘들다는 감상이 아니였을까? 일본인의 경우, 못생긴 외모나 야만적이란 험담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서양문명을 스폰지처럼 흡수하며 빠른 근대화를 이루어 가고 있는 일본인에 대한 평가는 분명 우리와는 천양지찬이다.

당시에는 서구의 과학문명이 어떻게 타자를 압도하게 되었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구분이 분명하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이유를 찾았다. 그래서 찾아진 설명은 그것이 원래 그럴수밖에 없었다는것. 즉 서구가 타자들보다 발전할수 밖에 없는 것이 필연이라는 설명이다. 원래 그럴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인종적 원인에서 찾은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자신들과 타민족들을 구분짓기에 편리하고 유용했으며, 자신들의 지배자적 위치, 혹은 불공평한 교역이나 타자에 대한 몰이해를 정당화시켜 주는 효과도 있었기 때문이였다. 원래 그런것이니까 말이다. 이만큼 간결한 설명을 해주는 다른 원인은 기독교국가라는 이유가 있었는데, 이 역시 당시에는 충분한 설명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째거나 이제는 누구의 지배에 들어가는것이 최선이냐를 고민해봐야 할만큼 나라의 국운이 쇠퇴해 있었던 이유는 무었일까? 당사자인 조선과 일본 그리고 제3자 일수만은 없었던 3자의 입장차이를 돌이켜 보는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될것이다. 우리가 이책을 통해 관찰자들의 시각에 뭍어 있던 시대적, 문화적, 한계들을 되집어 보았다면 이러한 일들은 더욱 의미 있는일이 될것이다.



 

한국의 경우 - 너무나 조용한 아침의 나라

이순신만한 장군이 자살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전투로 전사를 하게 된 상황을 곰곰히 돌이켜 보면, 결국은 경직된 유교이념의 교조화로 인해 조선사회가 극도로 보수화의 길을 걷게 된것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국가적인 승리를 견인한 장군들이 전쟁이후 역적으로 몰려 도륙당하고, 백성들에게는 왜적과 별반 다를것도 없는 도독놈 취급을 받은 명군의 은혜를 사무치게 고마워한 사대부들의 굴절된 시각을 이해해 본다면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원래 조선왕조는 임진, 병자의 양호란을 마감했을때 망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의 어느 역사를 뒤집어 봐도 이만한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고도 왕조가 뒤바뀌지 않은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국토를 황폐화 시키는 전쟁을 연이어 한세기 내내 치루면서도 기득권, 혹은 집권세력들은 당시 체제의 모순을 고민하거나, 자기반성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고, 좋았던 과거로의 회귀만 꿈꾸었으며,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만 돌렸던것이다. (이 비난이 현재에는 유효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총체적인 난국을 겪으면서도 조선왕조에게는 3번의 기회가 있었다고 생각해 본다. 첫번째는 광해군의 개혁이다. 연산군이라면 모를까.. 폐륜아라는 비난은 광해군의 경우는 억지에 불과했다. 광해군이 폐서인되면서 그가 펼쳤던 외교와 내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없어도 될 전쟁을 억지로 치루면서 국토는 또다시 전쟁터로 변해 버렸다. 임진년의 과오에 대한 반성이 없이 쿠테타로 정권을 탈취한 서인정권은 역사를 거스르는 반동에 다름이 아니였다. 다만 백성들은 너무 지쳐 있어 누구라도 좋으니 정권이 안정돼기만을 바랬고, 당파싸움이 아닌 군사를 동원한 쿠테타였기에 합리적인 이의제기도 이루어질수가 없었던것이다.

다음은 정조의 개혁이였다. 숙종대의 수많은 사화를 거치며 왕이 정치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영조의 탕평책은 이를 바탕으로 당파정치를 현대의 의회정치처럼 국정의 틀안에서의 정책대결로 조정해가는 형편이였다. 또한 이미 재야의 유림을 중심으로 북학파나 양명학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학문적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치세는 충분히 길지 못하였고 그의 죽음과 함께 세도정치의 서막이 열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는 대원군의 집권인데, 이미 시기적으로도 늦어 있었고 방향도 잘못 잡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대원군이 계속 집권을 했다하더라도 운명이 달라졌을지는 의문이다.

서구가 17C쯤에 형성하고 일본이 19C에 비로서 이룩한 중앙집권적 국가체계가 조선왕조의 경우에는 이미 태종대즈음에 완성이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조선왕조 후반기쯤에는 외척과 권문세가의 전횡으로 왕권은 유명무실한 상태에 있었다. 왕이든 대통령이든 총리든 그들이 존재하였던 이유는, 백성이나 국민을 복되게 하기 위한것일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가치관을 바탕으로 성립되어 제도로써 뒷받침을 받게 된것이다.
 
그러나 입으로는 위민을 떠들던 당시의 집권세력들에게는 그런 의지가 없었고, 대원군이 등장하며 외척과 권문세족들을 압박하며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기 시작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외척과 권문세족들은 다시금 권력을 장악했으며, 어렵게 막아왔던 열강의 압력은 더욱 거세어졌다. 유일한 대안은 호랑이의 등을 계속 갈아타는것이 되고 말았던것이다. 이제 조선은 마지막 기회조차 놓쳐버린것이였다.



 

일본의 경우 - 아시아의 모범생

서두에 밝혔듯이 불편한 사람들과 이웃이라는것처럼 난감한 일이 없다. 특히나 타인에 의해서 그들과 우리가 비교될때는 더욱 그렇고 말이다. 유색인종으로는 유일하게 세계의 열강으로 인정 받으며 당당하게 세계로 뻣어간 이웃마을 일본과 '한번도 독립국인 상태였던 적이 없다'는 '스스로 나아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평가를 받은 우리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더욱 비참하다. 거기에 저자는 계속해서 세계속에서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하며 성장해간 일본의 행적을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서구의 충격속에서 일본이 능동적으로 그들을 모방해가던 과정에서부터, 차차 그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자신들과의 차이를 알게되며, 자신들만의 아이덴티를 확보해 가는 과정까지 말이다.

페리함대의 함포에 의해 문을 열었던 일본은 영국함대와 연합함대에 뜨거운 맛을 보았던 죠슈와 사쓰마가 압장서서 근대화의 길을 선도했지만, '동방의 조용한 나라' 한국은 완전히 세계정세속에서 동떨어져 있었던것이다. 외국인들이 반복해서 지적하였던것처럼, 세상 어찌 돌아가는 줄 모르던 우물안 개구리 엘리트들은 백성들을 수탈하는 가렴주구에만 몰두해 있었고, 무기력한 백성들은 활력 없는 정체된 삶에 이골이 나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와서도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기보다는 체면과 가문만을 위했던 유학자들이나, 이권을 둘러싼 권력에만 몰두했던 왕족들을 재조명하며, 우아한 모습으로 '내가 조선의 국모니라'같은 대사나 읆어 대고 있는것을 보면 확실히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공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과연 그들이 우리민족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사람들일까?

일본의 근대화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다이카 개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정토와 외래종교인 불교가 격렬히 대립하는 와중에 천황의 전권대리를 수행한 쇼토쿠태자는 불교를 국가종교로 받아 들이고 중국의 율령체계를 받아 들이는 일대개혁을 단행했다.
 
이미 백제, 고구려, 신라를 통해 문물을 끝임없이 수용해온 배경이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일것이다. 이러한 개혁으로 일본은 비로써 제대로 된 국가체계를 갖추기 시작했고, 이러한 경험은 이후로도 외래문물의 수용에 일본이 보다 적극적이 될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일본 근대화의 와중에 심지어는 영어로 모국어를 바꾸자고 주장할만큼 외래문명의 수용이 적극적이 된데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주효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외래의 문물이 들어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면 그뿐일뿐  발전된 외부의 문화는 언제나 일본을 자극하고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였다. (이러한 상황은 외부의 신기술을 누가 먼저 받아들이느냐로 시장의 지배력이 갈리는 기업상황과 같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때문에 일본의 외래문명의 수용은 지배층이 더욱 적극적이였고, 이는 외래문물의 확산에 더욱 좋은 조건이 되었다.

더우기 어차피 자신들이 가진 종교, 정치, 사상의 모든것은 외부에서 온것이였기 때문에 더 좋은것이 보인다면, 기존의 가치와 수단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기엔 더 좋은것과 나쁜것만이 있을뿐, 선악의 차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지켜야 할 가치가 존재하지 않았던 탓이라고나 할까?



P.S 예전에 데리고 있던 알바얘 레포트로 써준 서평이다. 내용이 길어서, 자신이 잘 이해가 안가는 문구는 삭제했다기에 기록을 위해 올려둔다. 6개월간 봉인해 두기로 약속했는데, 그 기간이 1년이나 지났으니 오픈해도 문제가 없을듯 하여 오픈해 둔다.

by 머언산 | 2007/08/19 15:16 | 책과 서평 | 트랙백(1) | 덧글(0)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